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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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앤피스가 고른 밑줄]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Before 22 2019. 6. 11. 18:43
우리 민족은 음식재료를 파쇄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오는 미각의 차이를 민감하게 캐치했다. 혀와 코와 눈이 그만큼 예민했던 탓이리라. 마늘과 파만 해도 칼로 썰었을 때와 칼등으로 으깼을 때와 손으로 문질렀을 때의 맛이 전혀 다르다. 영양학적으로는 무쇠 칼의 철 성분이 비타민을 파괴한다고 설명하겠지만 옛 어른들의 설명은 달랐다. 쇠를 대면 채소 안에 든 생명력이 달아난다고 이해했기에 조리 과정에서 칼 대는 것을 금기했다. 되도록이면 손을 썼고 손이 안되면 나무나 돌을 썼고 그게 정 안 되는 최후의 순간에만 생명체의 몸레 쇠붙이를 댔다. ... 가래떡이든 무든 칼국수든 가늘게 고르게 써는 데엔 선수였던 우리가 정작 한식 조리에서 칼로 써는 공정은 되도록 피했다는 것은 정말 흥미진진하다. .. 고추를 손바닥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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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보잘 것 없어도 추억이니까Before 22 2019. 6. 3. 15:17
학창 시절엔 산을 그린 크로키를 꽤 오랫동안 들여다본 일이 있는데, 너무 형편 없어서 기겁을 했다. 하지만 서투름 안에는 젊음이 아니면 그릴 수 없는 거친 면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전혀 모르고 있던 부분이 마구 튀어 나와 있었다. 나는 보잘 것 없고 가난했던 청춘을 부끄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그리웠나 보다. 말하자면 이런 거다. 나는 글 쓰는 일에는 아마추어니까, 훈련은 받은 적도 아예 없으니까. 이 책은 막 글쓰기를 시작한 때였으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그래도 지금이라면 잊어버렸을 일들을 썼으니까, 거칠고 서툴게 크로키를 한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그 점은 잊기로 했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까 ... 보잘 것 없어도..